양양 촌사내의 비료포대 이야기;퍼온 글

[ 정선에 와서 번성한 양양 촌사내의 가족 ; 가장, 2녀, 맏상주가 '07년 정선군 3 1 절 건강

달리기대회에 나갔던 모습 ]


아래 글은 정선시절 중요한 이웃이었던 양양출신 촌 전고의 글을 퍼왔음.

비료포대
영상의학과소식
[출처] 비료포대|작성자 방사

이번 설은 형님과 부모님이 계신 인천에서 연휴를 전부 소진하고 미안한 마음에 그 주 금요일
퇴근후 처가인 태백으로 출발하는데 눈이 오기 시작한다. 눈길이야 그냥 일상인 강원산간 교

통이
고 삼척시 어리동과 태백시 원동을 이어주는 고개만 넘어 준다면야 . . .
이 고개는 10분이면 넘을수 있지만 강원산간 13년 운전인 나도 경사도와 급커브가 부담스럽

다. . .
이 길을 못 넘으면 다시 1시간을 우회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정선에서 처가까지 1시간15분 거

리,
처음부터 다시출발과 같은 거리다. 고마우신 선행들의 다량의 모래살포로 커브에서만 미

끈미끈
무사히 도착. 눈은 계속되고. . . .
유년을 보낸 고향 양양과 같이 고랭지채소가 주업인 이곳도 겨울 한철은 휴식기간이다.
요즘은 비닐하우스경작이나 농한기 부업으로 바쁜 농가도 있지만 유년시절의 농가는 4월~10월

머슴과 같은 중노동이고 감자, 고구마, 무, 김장김치 등 겨울양식이 저장되고 집집마다 한

겨울
땔감준비가 끝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신선이다.

가지 쳐서 시작된 고향이야기 더해보자.
달래촌은 윗달래와 아랫달래로 나뉘는데 나는 윗달래가 고향이다. 지금은 이 지명을 사용하는
이가 별로 없고 행정구역상의 한문인 상월천과 하월천으로 불리고 있다.
한겨울 어른들은 사랑방이나 동회(지금의 마을회관 같은 곳) 그곳에선 단오나 성황당 제사 같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주로 사용하는 규모가 조금 큰 마을 공동주택이 있어 그곳에 모

농악을 하거나 마작으로 하루를 보네고 마을 아낙들은 떡 추렴 메일국수 추렴 등 동네 가

옥을
돌아가며 농한기의 여유로움을 즐겼다.
동회, 이곳에 마을 공동재산을 보관하고 마을대소사 협의 공간이자 놀이간이다. 이곳 마당에

좌측에 무기고가 있고 우측에 조그마한 탑 위에 사이렌이 있었다.
싸이렌- 급박한(산불, 공비출현) 일이 있을 시 누구나 올라가 수동 경운기 시동처럼 손잡이를
돌려 위급함을 알렸다. 내 기억은 산불이 발생 했을 때 자주 울렸는데 싸이렌이 울리면 모든
동작을 멈추고 동회로 급히 모여 상황을 파악하고 산불진화를 위해 출발했다. 선발대는 자전

거를
타는 젊은 청년들이고 그 뒤를 이어 삽 곡괭이 톱 갈퀴를 챙겨 아이들까지 총출동하곤

했다.
무기고- 시골 작은마을에 무기고가 있었다고 하면 의아해 하겠지만 3평 규모의 무기고에는 엠

총과 실탄이 다량 보관 되어 있었으며 목적은 무장공비 출현 시 마을 청년들의 무장 및

예비군
작전 투입용이었을 것이다.
나는 기억이 없지만 누나와 형은 어느 겨울 아버지가 젖먹이 나를 포함, 어머니와 누나, 형을
한방에 모이게 한 다음 주변에 쌀 포대를 이용, 참호처럼 만들고 나가셨다고 한다.
이때가 68년 1월 울진 삼척 무장공비의 북상으로 농사꾼인 아버지가 작전에 투입된 시기일 것

이다.
젊은 청년들은 폭설이오면 멧돼지, 노루, 고라니, 토끼를 사냥하였는데 노루, 고라니, 토끼

자주 사냥에 성공 하지만 멧돼지는 보지 못했다. 선창과 후창의 고기 덩어리가 차이가 난

다해도
멧돼지는 위험한 동물이라 피함이 있었을 것이다. 허나 우리 집은 물론 집집마다 창을
보유하고
있어 겨울철은 사냥에 이용하고 1975년경 화전금지, 화전정리 등 관의 감시로 화전

이 불가함에
따라 부족한 경작지 보충을 위해 논농사에 불편함이 있지만 논두렁에 콩을 심었

는데 이때 이 창
이 다시 한번 사용 된다. 물기가 있는 논두렁은 창의 무게로만으로 땅을 찍고
45정도 기울기를
유지하며 그 공간에 콩3~4알투척, 창을 뽑고 발로 지그시 발고 지나가면 끝.
. . 호미 사용으로
허리 굽일 일 없이. . . .

그 당시만 해도 한집에 4형제면 가족계획이 확실한 집이어서 한집에 5~6명의 형제가 오글오글

친구들이 다수였다. 작은 산골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놀이집단은 충분했다. 담배농사하는 농

가 인
근에 흙벽돌로 지어 잎담배를 건조하는 건조실, 이게 뭐더라 기억이 영~ . . . 좌우지간
이곳이
아지트. 이곳에서 담배 몰래 피우며 달걀 만들기, 굴뚝연기 만들기도하고 화투까지..

겨울놀이
중 연날리기, 개구리 잡이, 토끼사냥도 있지만 겨울 하면 단연 눈설매. . .
볏짚한단을 풀어 비료포대 안에 깔아 방석처럼 만들어 쿠션이 가능한 비료포대 썰매가 인기였

다들 기본으로 1~2대는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 주된 내용인데 넘 돌아왔다.

처가에서의 다음날 아침 아이들이 난리다.
대충보기에도 20cm정도의 적설량과 계속내리는
눈, 아침부터 태백산 눈썰매장 가자고 난리다. 눈길이야 걱정이 없지만 눈꽃축제 기간에 눈까

내렸으니 밤새 눈을 업고 있던 차량이 이동한 자리가 아니면 주차 공간은 없는 것이다.

[ 양양출신 사내와 태백출신 색시가 힘을 합쳐서 정선에서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는

데 . . . 그럼 야들은 정선출신이나? ]
밥 먹고 처가 마당 제설작업 하면서 아이들을 눈사람 만들기로 정신을 홀려 놓고 강원도 비탈
(우리 누님 별명이 비탈이다. 어~이 강원도 비탈!) 배추밭에 비료운송용 포크레인 길이 보여
외길 썰매길 만드니 대충 60m는 족히 되다. 길이는 좋은데 산과 비슷한 경사면을 가진 밭이라
제동거리가 부족하여 2.5m의 농로에서 제동을 못하면 옹벽과 충돌 아님 계구장가에 날아가 떨

어지
는 사고가 생길 일. . .
1시간여의 삽질로 흡사 봅슬레이커브처럼 농로로 방향을 잡았다. 대신 동시출발은 없다. 앞선
발자의 속도가 없으면 뒷사람이 덮친다.
하루 종일 놀고 비료포대를 하나씩 집에 가져가자고 한다.
자슥들 몰랐을 것이다. 비료포대의 진정한 쓰임새와 위력을....,

큰딸! : 동영상 퍼오지 못 함. ㅜㅜ 암튼 즐거운 모습이었음.
둘째!! : 동영상 퍼오지 못 함. ㅜㅜ 암튼 즐거운 모습이었음.
막내! : 동영상 퍼오지 못 함. ㅜㅜ 역시 맏상주다운 무공을 보여주었음.

이 몸도...,ㅎ 아래와 같이 고참 촌사내의 자세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


집주인 전고는 걸어다니는 자연선생님이다.
초여름이 되면 새벽에 산에 올라 아침거리 나물을 캐오고, 가을이면 새그물을 쳐서 참

새를
잡아 구워먹고, 작년 봄엔 혼자 산삼을 캐왔다.(헌데 장소는 안알려주더만 . . .)
그와 같이 산에 가면 나무에 쨩똘로 구멍을 내서 음료수 대신 수액을 받아먹고, 닭도 잘
잡고, 코펠뚜껑과 과도만 주면 사시미를 쳐내고 . . . 그런 사람이다.

아래 '07년 7월초 그의 고향 하월천리 시루봉
http://blog.empas.com/mcl826/ 올랐던 모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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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료포대|작성자 방사
  • 청청수
    2009/02/23 00:20
    푸하하하
    고참 산골촌놈이 고작 비료운반용도로에서 저런 험한 꼴을 보이다니 . . . 푸하하하하
    근데 역시 비비탄 총잡이가 젤 낫네요.

    이거 퍼가야겠다. 요즘 무기력증에 빠져서 블로그질 할 힘도 없어요. ㅜㅜ
  • 허우대임
    2009/02/23
  • 마지막 사진은...ㅋㅋ 어디 콘테스트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듯...세상에 이런일이??ㅎㅎㅎ

by 청청수 | 2009/02/23 00:36 | 정선! 잊을수없는 곳!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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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달래촌놈 at 2009/05/20 13:42
나도 진짜 달래촌놈(윗달래)인데 조금은 갸우뚱..
.고구마는 별로 못보았고,마작은 몰라서 못하고,
담배농사는거의 안하고....
어째든 반가우이 .그런데" 전"00이라...윗달래에는 전씨가 몇집없는데 (현재는1~2집정도)...뉘실꼬?
찬찬찬과 연관이 있을듯도 헌디
Commented by 청청수 at 2009/05/21 16:36
가운데 글자가 찬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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